로베르토 슈만(Roberto Schumann)

지난 호에 이어 오늘도 슈만의 음악을 듣겠습니다.

로베르토 슈만(Roberto Schumann)

교향곡 3번 ‘라인’Symphony No.3 in E♭Major‘Rhenish’Op. 97
라인강하면 우리에게 쉽게 떠오르는 두 가지의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웠던 ‘로렐라이의 언덕’이고 또 하나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하면서 모토로 삼았던 ‘라인강의 기적’입니다.

70년대 말에 처음으로 독일에 갔다가 로렐라이 언덕이 보이는 강변에 차를 세우고 아름다운 라인강을 내려다보면서 왜 이들은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우리는 못 살아야 하는지 한탄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무리 로렐라이 언덕을 쳐다보아도 로렐라이도 인어 공주도 보이지 않았지만 로렐라이의 노랫말처럼 제‘가슴속에 끝없이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도 한번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아내 클라라와 같이 라인강을 여행하던 슈만은 자신감과 행복감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라인강은 독일을 상징하는 강입니다. 1850년에 당시 새롭게 주목 받던 도시 뒤셀도르프(Dusseldorf)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어 기대에 차 있던 슈만은 라인강을 여행하며 조국 독일과 독일 음악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런 그의 마음이 교향곡 3번에 면면히 나타납니다. 바흐로부터 베토벤, 슈베르트, 그리고 멘델스존으로 이어져 온 음악의 전통이 자신의 음악과 합해져 라인강의 물결처럼 이어지기를 염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교향곡에서는 베토벤의 영향력이 느껴집니다. 힘차게 시작되는 1악장은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을 떠오르게 하며 또한 구성이 모두 5악장으로 된 것은 전원교향곡을 본뜬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곡 전체에 흐르는 노래와 같은 선율에서는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의 영향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자신이 2악장에다‘라인의 아침’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고 또 쾰른 대성당에서 목격한 의식(儀式)에서 받은 감동을 그려낸 4악장에는‘장엄한 의식의 반주의 성격으로’라고 적었듯이 이 곡 전체를 통해 음악의 시인(詩人)이라는 슈만의 면모가 드러납니다.

라인이라는 제목은 슈만이 붙인 것은 아니고 초연 뒤에 어느 평론가가‘라인의 생활에 관한 조망’ 운운한 뒤에 자연스럽게 붙은 별명입니다.

여하튼 슈만은 독일이 사랑하는 라인강의 다양한 모습과 그 강을 기반으로 하는 독일의 전통과 자부심을 이 교향곡을 통해 잘 그려냈습니다. 그렇기에 초연 당시 관객들은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곡이 다 끝난 뒤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까지 슈만에게 갈채를 보내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사십여 년 전에 제가 라인강을 갔을 때와 달리 지금은 우리 고국도 잘 사는 나라의 하나가 되어서 감개무량합니다. 작년 가을 한국에 갔다가 한강 변을 손주들과 산책하면서 참 여러 가지 감회가 떠올랐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이 곡을 들으면서 라인강이 아닌 한강 변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들으시면 어떨까 합니다.

오토 클렘페러가 지휘한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연주,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NBC 관현악단의 연주도 아주 좋지만 오늘 우리는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D 단조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엔 기이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의 협주곡 중 가장 나중에 작곡된 이 곡은 당대의 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에게 헌정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초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슈만 사후 80년 동안 잊혀져 있었습니다.

이 곡을 작곡한 1853년 9월에 슈만은 이미 심한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1854년 2월에는 라인강에 뛰어들었다가 구조되어 요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이러한 슈만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요아힘은 이 협주곡이 정신적으로 비정상인 상태에서 쓰였다고 확신했기에 이 곡의 초연을 기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슈만의 사후에 요아힘은 이 곡의 악보를 프로이센 국립도서관에 넘기면서 슈만 사후 100년 즉 1956년 이전에는 출판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1933년 요하임의 조카딸인 옐리 다라니(Jelly d’Arányi)와 아딜라 파치리(Adila Fachiri)의 꿈에 슈만이 나타나서 이 작품을 찾아서 연주하라고 요청했답니다.

두 사람은 이 곡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프러시아 국립도서관에 이 곡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이렇게 해서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80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되었고 당시 독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게오르크 쿨렌캄프와 베를린 필에 의해 초연이 이루어졌습니다. 1937년 11월이었습니다.

이 곡에는 슈만 특유의 낭만과 기량이 담겨있습니다. 작곡할 당시 슈만이 정신착란증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어서였는지 작품의 완성도가 좀 떨어진다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나타 형식의 강하지만 너무 빠르지 않은 1악장이 지난 뒤 천사가 들려주는 멜로디를 받아 적었다고 슈만 스스로가 말하는 2악장의 꿈결처럼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쉼 없이 계속되는 3악장에서 현 위를 바삐 미끄러지며 활이 빚어내는 희망에 찬 노래를 듣다 보면 왜 나중에 이 곡을 연주했던 명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힌 (Yehudi Menuhin, 1916-1999)이 이 곡을 그렇게 칭찬하며 즐겨 연주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명장 Henryk Szeryng의 바이올린과 Antal Dorati가 지휘하는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 보겠습니다
좋은 시(詩)를 쓰고 싶어 하는 시인에게 때로는 시마(詩魔)가 나타나서 도와준다고 합니다. 슈만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을 때엔 어쩌면 음(音)의 요정이 나와서 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의지할 것은 시마(詩魔)도 아니고 음마(音魔)도 아니고 오직 성령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번 주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에 의지하셔서 평안한 매일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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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