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의 사투

시내버스 운전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 바로 저의 영어능력입니다.
“에이~ 전도사님은 영어 잘 하시잖아요.”

참으로 어색한 칭찬입니다. 아마도 키위 회사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기 때문에 받는 오해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확언하건대 제 인생에 있어서 제일 큰 장애물은 영어입니다.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은데 영어 때문에 너무도 많은 시간이 소비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영어만 아니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사실 제 영어는 자칭 ‘생존형 영어’입니다. 영어권에서 일하고 살기 위해 익힌 영어라는 말이지요. 한국 사람이라고 모든 사람이 모든 분야의 한국어를 다 잘하는 것은 아니듯이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고 해서 모든 영어에 다 능통한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냥 일하고 생활하는데 큰 불편 없이 사용할 정도의 영어만 구사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컴퓨터를 잘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듣습니다. 웬만한 프로그램들은 사용설명서가 따로 없어도 어느 정도 다룰 줄 아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제가 컴퓨터를 잘 한다는 것은 제가 필요한 부분에서만큼은 불편함 없이 쓸 수 있다는 것이지 모든 분야를 다 잘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명령어들은 사용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일정한 원리들을 적용해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많이 써 본 사람, 다른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사람, 원리를 깨우친 사람들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어느 정도 숙련이 되면 어떤 프로그램이든 대충 사용방법을 짐작해서 아는 정도가 되거든요.

컴퓨터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의 기준은 딱 한 가지입니다. 컴퓨터를 이용해 내가 필요한 일을 편리하게 할 수 있으면 잘 하는 것이요, 컴퓨터가 있어도 내가 필요한 일을 할 수 없다면 그건 컴퓨터를 못 하는 것입니다.

즉,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문서출력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할 수 있으면 잘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사용하고 싶은데 컴퓨터 전원을 켜고 웹 브라우저를 열고 주소 창에 주소를 입력해 필요한 정보를 찾아 클릭할 수 있다면, 그리고 사용을 마친 후 무사히 전원을 끌 수 있다면 컴퓨터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영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에 큰 불편함 없이 영어를 쓸 수 있다면 영어를 잘 하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장보고 결제하고 아는 사람 만나 인사 나눌 정도면 영어를 잘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라면 저도 영어를 꽤나 잘 하는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지만 아직도 원어민들이 맥락 없이 던지는 유머나 뜬금없는 표현들은 들리지도 않고 이해되지도 않아 여전히 불통의 고통을 느끼곤 한답니다.

저희 아이들은 아빠가 영어를 쓸 때마다 창피해서 쥐 죽은 듯 조용해집니다. 국적 불명의 영어를 쓴다는 겁니다. 하긴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미국 영화를 보며 자랐고 캐나다에서 반 년짜리 어학연수를 해서 뉴질랜드에 16년째 살고 있으니 잡탕영어를 구사할만하죠.

그런데 제 영어의 가장 큰 약점을 최근에야 발견했습니다. 말을 잘 하려고 항상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 듣고 있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영어실력을 늘리려면 많이 듣고 따라 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말할 때 나는 내가 할 말만 궁리하고 있으니 듣지를 못하고 이해를 못하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듣는 영어가 잘 안 되는 편입니다.

그래도 십 수년을 이 땅에 살다 보니 이제 아주 조금 영어를 사용하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영어를 잘 하려면 잘 들어야 되겠더군요. 들어야 말이 늘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여서 많이 배우고 듣는 사람들이 믿음도 성장하더라고요.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의 믿음의 수준은 늘 제자리이듯 영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또 한 가지는 언어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되겠더라구요. 언어를 그렇게 사용하는 이유, 그 배경을 안다면 더 쉽게, 더 정확하게 영어를 구사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버스 안에서’를 영어로 어떻게 말할 까요? 아마 많은 한국인들은 ‘in the bus’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 사람(?)들은 대체로‘on board’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영어 사람들의 버스 문화는 지붕 없는 마차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마차는 보드 위에 올라가서 타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in 보다는 on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지요. 이처럼 그런 말을 쓰는 배경을 좀 더 이해한다면 영어가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또 한 가지는 언어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하겠더라구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한다, 못 한다를 구분할 때 발음을 많이 얘기합니다. 그래서 발음이 좋은 사람, 그리고 미국식 영어발음을 하는 사람이 영어를 잘 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변 키위들에게 물어보니 발음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액센트가 정확해야 더 알아듣기가 수월하다고 하더라구요. 또 한가지, 문법은 좀 틀려도 좋으니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소통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일입니다. 하루는 제 방 룸메이트와 방 안에서는 영어만 쓰고 살기로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3일만에 깨졌습니다. 이유는 방 안에 사람이 있어도 침묵만이 흘러 넘쳤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저히‘묵언수행’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없던 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굉장히 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어떤 얘기를 하던 잘 듣고 잘 웃어주기 때문입니다.

험한 일(?)을 하는 이들의 영어는 때론 매우 거친 표현들을 담고 있습니다. 또 마음이 상해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때마다 저는 웃고 있으니 동료들이 저를 착한 사람으로 오해(?)하는 일이 생긴 겁니다.

저도 영어를 굉장히 잘 했다면 따지고 고치고 끼어들고 오만 가지 진상(?)노릇을 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러다 보면 저도 그냥 보~통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 밑천이 좀 약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주로 들어주는 입장, 또 어색함을 만회하기 위해 지었던 억지 웃음이 좋은 인상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때론 침묵하며 들어줌이 다른 이들에게 위안과 안식이 되는 모양입니다.

오늘은 일하는 중에 만난 영어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냥 생존영어에 관한 몇 가지 제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이곳에서 나서 자라지 않는 한 어차피 현지인과 같은 영어를 사용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우리가 한국 TV에 나오는 한국말 잘 하는 외국인들을 보며 신기해 하고 그들의 틀린 표현에 대해 관대한 것처럼 현지인들도 우리가 원어민이 아닌 것을 알고 있으니 우리와 대화를 할 때에는 이미 틀린 영어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자신 있는 의사표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두 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민자들을 보며 부러워하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오늘도 영어와의 사투에서 무사히 생존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