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같은 마음 살 같은 마음

윤영준 목사<뉴질랜드충현교회>

이민 생활은 참으로 만만치 않습니다. 낯선 땅에 와서 낯선 문화 속에서 서툰 언어를 가지고 살아가다 보니 너무나 많은 면에서 어려움과 한계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내 조국 같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거나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이곳에서는 너무나 크게 다가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방어 본능이 생깁니다.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외부의 자극에 움츠려지게 되고, 때로는 매우 과민하게 반응하게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굳어져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포용할 수 없는 외골수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어쩌면 열등의식에서 온 것 일 수 있습니다. 내 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 아직 신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 내세울 만한 좋은 직장에 다니지 못한다는 것, 언어가 서툴다는 것, 그리고 삶의 여유가 없다는 것 등이 현지인이나 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열등감으로 다가오니까 내 마음의 아픔을 들키지 않고,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굳어져서 보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신의 삶의 영역이 좁아지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나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굳은 마음
요즘에 나는 ‘매일 성경’(QT책) 본문을 따라 에스겔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말씀을 보니까 바벨론 침공 가운데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딱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자기 동족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들을 멀리 떠나셨다. 이제 이 땅은 우리의 재산이 되었다(에스겔 11:15, 쉬운성경).” 즉, “이제 이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고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포로로 잡혀가는 사람들은 에스겔을 비롯한 왕족, 고관들, 그리고 기술자들입니다. 유대 사회의 유력한 인물들이죠. 바벨론은 자기들이 보기에 쓸모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하고, 기술이 없는 서민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잡혀가는 사람들을 향해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괴로움 가운데 끌러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위로가 아닌 조롱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열등감에서 오는 굳은 마음인 것이죠. 그 마음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기 동족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의 얘기입니다. 나는 요즘 내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돌같이 굳어져 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처음 하나님께 소명 받았을 때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해 주고 그 문제를 놓고 함께 울면서 기도해 줬던 부드러운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딱딱해져서 사람들의 아픔을 잘 공감하지 못하고 진정한 위로를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잘못된 자기 방어에서 온 것 같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 가운데 뜻하지 않게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이 굳어 버린 것이겠죠. 그래서 상대방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진정으로 위로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드러운 마음
나는 지난 한 주 동안 이것으로 인해 마음이 참으로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나의 돌 같은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성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진짜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이렇게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이 내 마음에 빛으로 다가 왔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새 영을 넣어주겠다.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에스겔 11:19, 쉬운성경).”

‘아 내가 할 수 없구나. 나에게는 소망이 없구나. 그래서 이제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새 영을 주셔서 돌 같은 나의 마음을 살 같이 부드럽게 하신다고 하시는구나.’ 저는 이 말씀 앞에서 소망을 찾았습니다.

‘단단한 쇠 덩어리가 용광로에 들어가면 녹아져서 부드럽게 되고 대장장이가 원하는 모형으로 빚어지듯이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때 나의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주님이 원하시는 모형으로 빚어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나는 오늘도 이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영을 구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불 같이 임하셔서 나의 굳은 마음을 녹이시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만들어 주셔서 진정으로 성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게 하옵소서.”

굳은 것은 단단해서 강해 보이지만 자기보다 강한 충격이 오면 산산이 깨어져서 다시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에 부드러운 것은 연약해 보이지만 강한 충격이 와도 깨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충격을 감싸 안을 수 있습니다. 또 돌은 차갑지만 살은 따뜻합니다.

나는 이민생활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드러운 마음이야 말로 모든 관계에서 상대방을 아프지 않게 하며 나 역시 깨어지지 않는 길입니다. 모든 열등의식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그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해 주며 따뜻함을 줄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러한 마음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미 그 약속대로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영으로 충만하면 됩니다.

오늘도 나와 함께 그것을 위해 기도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오 주님! 오늘도 주의 영이 불 같이 임하셔서 나의 굳은 마음을 녹이시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모든 어그러진 관계가 회복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