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들에게

맞벌이 부부(가구)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수익을 목적으로 부부가 모두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가구.”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단순히 수익 만을 목적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는 부부가 얼마나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혼자서 벌기엔 어려운 상황과 형편이 어려운 가정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한 사람이 더 일을 함으로써 수입이 늘어나게 되면 가족 모두에게 더욱더 편리한 삶의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많은 부부들이 맞벌이를 선택한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특성상 그에 따른 세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오로지 수익이 주된 이유라고 하기엔 조금 무의미함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성취도가 높아지는 이 시대에 필자는 요즘 엄마들은 확실히 좀 ‘다르다’는 걸 많이 느끼고 보고 있는 중이다.

개인 중심적인 삶이라는 전체적인 사회구조나 생활방식과 그 모든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어느 정도는 그래도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곁에서 자라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사회적인 활동이 필요해질 나이가 되기도 전에 유치원에 보내짐으로써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탁하는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는 추세를 필자는 경험한다.

어떠한 부모는 아이가 3개월이 되자마자 유치원에 맡기고 다시 자신의 일터로 나갔고 보통은 22주의 primary carer leave를 끝낸 6-7개월의 아이들이 infant/toddler classroom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러하기에 현재 뉴질랜드는 아주 어린 아이들을 부모가 아닌 조부모나 유모(Nanny)가 돌보거나 집에서 소수정예로 돌볼 수 있는 홈 베이스 센터나 플레이그룹이라고 불리는 여러 가지 형태의 교육 시설 또는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부에서 책정한 Ratio도 under 2/ over 2로 2살을 기준으로 해서 아이들을 숫자에 따라 돌 보는 선생님의 숫자 또한 달라진다.

물론 너무 많은 어린아이들이 사회에 좀 더 일찍 나오기 때문에 영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시설들이 점점 좋아지기는 하지만 세상 그 어떠한 것과 바꿀 수 없는 게 부모의 사랑이 아닌가.

필자가 감히 자기 자식을 위해 내린 선택을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유치원 선생님이자 한 아이의 영혼까지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필자는 이렇게 권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형편이 받쳐준다면,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며 상황이라면 아이와 적어도 2년 정도는 충분히 엄마 곁에서 엄마의 숨소리와 체취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유아교육학자들이 가장 권장하는 엄마가 아이에게 필요한 시기는 태어난 후로 3년이지만, 주변에 믿고 맡길 조부모나 지인이 있다면 아이가 18개월에서 2살 정도, 배변훈련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언어 소통이 되는 나이 때 사회활동을 시켜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많고 규모가 큰 유치원보다는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그에 맞는 작고 좀 더 집 같은 분위기의 따뜻한 교육환경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내 아이를 잘 돌봐줄 수 있는 선생님도 잘 만날 수 있도록 늘 기도하길 권면한다. 생각보다 우리 아이는 너무 빨리 자란다.

그리고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아질 나이는 너무나도 빨리 찾아온다. 아이와 보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다른 어떠한 것과 맞바꾸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는 여기서 생각이 나는 성경 이야기가 있다. 히브리 사람인 모세가 석 달 동안 숨겨 자라오다 갈 상자에 담겨 강물에 내려 보내어진다. 저 멀리서 강물을 따라오던 누이가 바로의 딸이 모세를 발견하자 모세의 친엄마이자 자신의 엄마를 유모로 소개한다. 그리고 모세가 장성하기 전까지 엄마 품에서 젖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그 엄마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고 엄마의 냄새를 맡으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모세는 나중에 히브리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가는 위대한 지도자가 된다.

각자의 집에 모두들 그러한 위대한 지도자가 적어도 한 명씩은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