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선 사람

“힘든 일이 있나요?”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늘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만나게 된다. 시간에 기대어 살다 보면, “아, 그런 일도 있었지.” 하거나 “그래, 그런 사람도 만났지.” 하며 무심코 말하는 때가 온다. 마음으로 용서하면 용납하는 말도 하게 된다. 지나온 기억과 상처, 그리고 회한을 더듬어 보는 일은 회생할 기회를 만나는 시기이다.

때로는 마음으로 용서 못한 상처가 잊힌 게 아니라 다만 묻혀 있다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사람으로 인해 모진 바람 같은 일을 만나고, 먹구름으로 가득한 환경에 처하고, 찬비를 맞기도 하지만, 산들바람이 불고 해가 빛나며 비 온 뒤의 무지개를 보는 날도 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지난 온 삶을 되돌아보면 붙잡지 않아도 생각나는 아쉬움은 늘 있다. 재주가 뛰어나 하는 일이 많고 영리해서 이것저것 참견하며 성공하려고 다투고 살아도 삶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붙잡으려고 할수록 놓친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때 했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못한 것은 아니다.” 그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정작 삶이 불행한 것은 자신의 속을 감추고 곁으로만 바쁜 척하며 사는 것이다. 이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사는 것이다. 인생이 피곤하고 사는 것이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울다 잠이 들어 보라. 깨어나 보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정말 인생은 아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르다. 현재까지 다른 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라도 항상 내 곁에 서 있는 사람과 더불어 살아보라. 곁을 준 사람은 집과 같은 사람이다. 집은 쉼을 주고 지친 영혼을 회복시키는 것처럼 내 속을 든든히 채워준다. 곁에 선 사람을 만나면 곁을 준 사람이 되고 속을 연 사람으로 친밀해질 수 있다.

“그는 먼 길을 지나 이 푸른 잔디밭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의 꿈은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있어서 그걸 놓치는 일은 거의 있을 수 없어 보였다.”고 피츠 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말하고 있다. 인생은 속을 연 사람을 만날 때 삶과 앎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누리게 된다.

거짓과 위선의 죄와 죄책감으로 사는 사람은 절대로 겉을 주지 않고 속을 열지 못한다. 사랑과 은혜와 긍휼로 속을 준 사람은 오직 예수이다. 나도 예수에게 겉과 속을 주고 살면 곁을 준 사람으로, 속을 연 사람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 지금 내 곁에 선 사람에게 진정 속을 준 사람으로 다가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