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남기는 유산

김성렬 목사<어린이전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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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자녀들에게 모든 재산을 양도하였습니다. 내가 자녀들에게 꼭 한 가지 더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 신앙입니다. 만일 그들이 이 신앙을 가졌다면 내가 그들에게 한 푼도 준 것이 없다 해도 저들은 부자일 것이요, 만일 저들이 신앙을 갖기 못했다면 내가 그들에게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그들은 가난할 것입니다.”

미국의 초기 정치가였던 패트릭 헨리의 말이다. 우리는 이민자로서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기려고 하고, 남기고 있는가?

성경은 이민자로서 후손들이 살아갈 땅은 남겨주었지만 하나님 신앙을 남겨주는 일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사사기2:10).

광야에서부터 하나님의 행하심을 분명하게 목격한 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가 열심히 땅을 정복하고 개척해 후손에게 물려주었는데 그 땅을 개척한 1세대가 죽고나자 그 터전에서 살게 된 다음 세대들은 하나님도, 그분이 자신들을 위해 하신 일도 망각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나안 1세대는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였으며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들어온 세대이기에 수많은 이적을 체험하고 기적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자신들이 경험했던 일들을 자식들에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개척 1세대들이 다 죽고 나자 후손들이 더 이상 하나님을 알지 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미래는 부모 세대가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에 달려있었다.

오늘 우리 이민교회와 가정의 미래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이 땅에서 우리 아이를 어느 학교에 입학시키고 어떤 직업을 가지게 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겠지만 더 중요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 신앙을 어떻게 그들에게 남겨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 세대로서 우리의 직무에 관한 일이며, 자녀들의 영혼과 그들의 영원한 삶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모세대로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기록된 말씀은 언제나 우리에게 문제와 해답과 실예를 제공한다. 시편 기자는 앞서 언급한 세대의 비극적인 역사를 회상하며 다시는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짐하고 있다.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시편78:1-4). 여기서 몇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우리의 답을 찾아보자.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기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무엇을 하실수 있는지, 그리고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자손들에게 전하겠다고 다짐한다. 오늘 우리가 가르쳐야 할 내용도 다르지 않다.

우리의 자녀들은 ①하나님이 누구신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머리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가슴으로, 개인적으로 아는 하나님이 되어야 독립적인 신앙을 가질 수 있다.

②그분의 능력을 알도록 해야한다. 하나님은 어떤분인가? 우주를 만드시고, 그 우주를 넉넉하게 품으실만큼 크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또한 자신의 작은 마음속에 거하시며 지금도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③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셨으며 지금 무엇을 행하고 계신지 알아야 한다. 신앙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무엇을 했으며,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있지 않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으며, 지금 무엇을 행하고 계시는가에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가장 기이한 사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다. 우리는 그 구원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또 다음 세대에 전할 책임이 있다. 오해해서는 안 된다. 단지 교회와 주일학교에 출석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어디에서 누가 가르쳐야 하나?
기독교의 역사에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오래 전 작고한 미국의 주니아타 칼리지의 엘리스 박사가 궁금해 한 것이 있었다. 지난 세기인 주일학교 운동이 막 일어나기 시작하던 시기에 왜 일부의 헌신적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주일학교 운동을 반대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궁금증을 풀기위해 동 펜실바니아 교회의 기록문서 보관소에 찾아갔다. 당시의 회의록에 주일학교를 반대한 이유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만일 교회가 그들의 자녀들의 가르침을 담당한다면 가정들이 그 일을 멀리하게 될 것이고 그 책임은 교회에 남겨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우려가 사실이 되었음을 이미 확인하고 있다. 성경의 원리는 ‘네 자식은 네가 가르치라’ 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부모들의 거룩한 소임인 자녀들에 대한 전도와 신앙교육의 책임이 교회와 주일학교로 떠넘겨진지 오래다.

이제 교회는 부모의 영적 책임을 새롭게 일깨울 필요가 있다. 신앙교육의 책임에 대한 부모의 공감과 가정의 협력이 없이는 다음 세대의 부흥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어지는 시편 78편 5-8절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의 열망은 자녀들이 우리의 가르침을 받아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한시간도 참지 못하는 조급한 세대들에게 어떻게 영원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며, 보이지 않는 것에 소망을 두고 인내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할 것인가? 부모와 교회가 환경이 어려울 때에도 쉽게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주변의 것이 아닌 위엣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갈 때 자녀들도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진정한 가르침은 말이 아니라 관찰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성경학자요 저술가인 워런 위어스비 박사는 말했다. “교회는 항상 존재해 왔지만 소멸과의 거리는 단지 한 세대 떨어져 있을 뿐이다.” 교회가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향한 자신의 영적 책임과 의무를 다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그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가?

글머리에 소개한 패트릭 헨리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들딸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하고 또 줄 수 있지만 정작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은 실상 아무것도 갖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이 이 땅에서 아무리 높은 권력과 재산과 지식을 가졌다 해도 결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지식과 신앙은 우리가 살아서 남겨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