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나라로

0
10

나그네는 길에서도 상처를 받는다. 나그네는 집 나와 길 위에 선 사람이다. 길 가는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을 때도 있어 목적을 가지고 떠난 여행자와는 좀 다르다. 나그네를 떠돌이로 부르면 그나마 어색하지 않다. 나그네는 결국 지나가는 사람이니까.

집 떠난 사람은 낯선 환경으로 인해 외로움을 안고 살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산다. 나그네 세상에서 나그네 노릇하며 사는 것이 버거울 뿐이다.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일수록 떠돌 수밖에 없다.

전쟁이나 박해를 피해 집을 떠난 난민은 위험한 상황 가운데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강제로 쫓겨난 경우에도 자유와 안전한 곳을 찾아 걸어야 살 수 있다. 살기 위해 가야만 한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시리아에서 요르단으로, 남수단에서 우간다로 난민들은 생명의 위협과 죽음의 그늘 속으로 도망쳐야 한다. 분쟁과 폭력에 노출된 난민은 경제적인 이유로 고향을 떠난 이주민과 정치적 이유로 찾아간 망명자, 그리고 나은 삶을 이유로 나온 이민자와는 전혀 다르다.

돌아갈 집을 잃은 사람들은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려고 한다. 오직 생존이 절대적인 본능이다. 인간 사회는 불완전하기에 언제든지 자연재해나 재난과 같은 긴급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정치와 사회의 혼란이 폭력이나 분쟁으로 퍼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사회는 자기방어와 응급대처를 훈련을 통해 능동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긴급상황에 자급자족하는 생존능력도 필요하다. 위기상황에 대비하려고 안전한 곳과 식품과 식수 등을 준비하고 있어도 분쟁이나 전쟁에서는 가족과 자기 생명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찾아온 이들을 보는 안전한 나라 내국인의 시선은 모두를 나그네나 이방인으로 여길 뿐이다. 성경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은 나그네나 이방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난민과 같이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맞아줄 나라가 있다고 증거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립보서 3:20)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기독교인은 죽음 이후에도 들어갈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다가오는 성령강림절을 맞이하면서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로새서 1:12-13) 아들의 나라에 대한 시민권을 가진 기독교인으로서 나그네, 이방인, 난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