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 방앗간 돌리시는 하나님

영국 케임브리지 근교 수백 년 묵은 풍차 하나 있다. 요즘도 쿵더쿵쿵더쿵 요란스럽게 돌아가며 곡식 빻는다. 세찬 바람 잠자는 방앗간 풍차 깨운다. 풍차 왜 내 단잠 깨우냐며 애꿎은 맷돌 못살게 괴롭힌다. 무거운 맷돌 빙빙 돌며 잘 익은 곡식 사정없이 부순다. 한 철 내내 벌판에서 자란 곡식 방앗간 만나 고운 가루 되어 다시 태어난다. 하얀 눈처럼 폭포수처럼 맷돌 사이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어릴 적 어머니 곁에 앉아 지켜보았던 그 맷돌 소리 다시 귓가에 들린다.

이 풍차 방앗간 깨닫기 쉽지 않은 하나님 섭리 큰 교훈 가르친다. 하나님 섭리 무언가? 마술 지팡이(Magic wand) 휘두르며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지는 도깨비 방방이식 연출? 하나님 섭리(Providence of Windmill) 가르치는 풍차 방앗간. 농부 들판 오가며 씨뿌린 그날부터 하얗고 고운 가루로 태어나는 기나긴 풍차 방앗간 여정. 여기 하나님 섭리 풍차 방앗간 돌아간다.

태초부터 새 하늘 열릴 그 날까지 돌아가는 풍차 방앗간 소리 성경 펼치면 들린다. 숱한 민족 숱한 인간 하나님 손에 붙들려 맷돌 속으로 들어간다. 부서지고 깨어진 후 하얀 가루 되어 다시 태어나는 인간 역사. 때로는 쿵덕쿵덕 시끄럽게 돌아가는 방앗간. 권력 투쟁 힘겨루는 전쟁 역사 칼부림 소리. 때로는 숨죽인 채 낮잠 자듯 느릿느릿 돌아가는 방앗간. 세상 욕심 우상 늪에 빠진 백성 바라보며 울고계신 하나님. 때로는 바람 없이 잠자는 방앗간. 교만 껍질 벗고 하얀 가루로 거듭날 그 날 침묵으로 기다리시는 하나님.

하나님 풍차 방앗간 소리 따라간다. 고대 아시리아 제국(Assyrian Empire) 만나 발길 멈춘다. 문명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이라 불리는 아시리아 제국. 티그리스강 메소포타미아 상부 오늘날 이라크 시리아 터키 그리고 이란 정착한 고대 역사 현장.
주전 25세기경 건설 후 주전 600년경 그 제국 이름 사라진다. 여기 하나님 눈에 별나게 들어온 제국의 한 도시 니느웨(Nineveh). 선지자 요나 그토록 증오하고 미워했던 도성. 산 사람 껍질째 벗길 정도 잔혹한 도시 니느웨. 산헤립 왕(King Sennacherib) 그 잔인한 통치 요나 귀 아프게 듣는다.

나훔(Nahum) 선지자 이 만행 폭로하며 심판 경고한다. “니느웨, 뭐가 이쁘다고?” “저더러 거기에 가라고요?”니느웨 백성 요나의 가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다. 하지만 어쩌나. 하나님 풍차 방앗간 니느웨 바람 탄다. 니느웨 하얀 밀가루 꿈 포기하지 않으신다.

결국 다시스 여행길 포기한 후 니느웨로 발길 옮기는 요나. 왕과 짐승까지 눈물로 회개한다. 하얗고 부드러운 고운 가루 가득한 전무후무 니느웨 도성 역사.

니느웨 백성 어쩌면 못생긴 ‘자투리 김밥’. 자투리 김밥 좋아하는 어머니 마음 하나님 마음 닮았다. 하나님 넓은 가슴 모든 시대 모든 민족 품으신다. 품고 또 품어도 늘 항상 넉넉한 품.“우리는 당신의 사랑 받지 못했습니다.”모든 민족 모든 시대 이 원망 소리 듣기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 앗시리아 도성 니느웨 백성들 위해 예언자 한 사람‘빌려주신’ 통 크신 하나님 품. 지난 수천 년 전 해묵은 니느웨 하나님 풍차 방앗간 이야기. 오늘 지구촌 어디서나 하나님 풍차 방앗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이 시대 우리 하나님 풍차 방앗간 소리 듣는가? 이 시대 뿔뿔이 흩어진 ‘자투리 백성’누군가? 이 시대 ‘자투리 백성 드라마’(A Drama of the Remnants) 무대 막 내렸나? 우리 종종 “우리 위한 하나님 계획 무엇인가” 묻는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계획 속에 맞출 수 있는가” 물어야 한다. “(God’s mission is) to figure out how we fit into God’s plan rather than what God’s plan is for us.” *(Dr. Monroe Brewer) 우리 종종 ‘우리를 위한’ 하나님 계획 끌어당기기 바쁘다. 바람 부는 곳 어디서나 돌아가는 하나님 풍차 방앗간 소리.

풍차 방앗간 소리 따라 다시 발길 옮긴다. 모던 데이 니느웨 모델 하나님 방앗간 소리 듣는다. 지구촌 많은 교회 아프가니스탄 하나님 품 떠났다고 생각한다. 1979년 소련 아프가니스탄 침략한다. 무려 5백만명 넘는 아프간 피난민 본토 떠난다. 지구촌 가장 큰 대규모 강제 디아스포라 피난 역사.
1980년 ‘복음주의 군인들’(Evangelical Army Soldiers) 가장 혹독한 이 아프간 전쟁 불 속에 뛰어든다.“복음주의 군인들 가혹한 핍박으로 희생될 수 있다.” 우려 소리 높다. 하지만 2001~2002년 사이 지구촌 교회들 아프간 향한 집중 기도 바람 일으킨다. 수많은 아프간 피난민 파키스탄 처마 밑 찾는다.
신비한 일 일어난다. 조심스러운 해석이다. “전쟁 없었더라면, 혹독한 피난민 신세 아니었더라면, 집 떠난 슬픔 없었더라면…아프간 백성 어찌 복음 접했을까?” 어찌 피눈물 나는 전쟁 고통 지불하며 아프간 역사 최초 복음 받아들이나?
전쟁 비호 해석 아니다. 인간의 전쟁 하나님 복음화 기회 만드신다. 아프가니스탄 디아스포라(Afghanistan Diaspora) 하늘 아래 하나님 풍차 방앗간 돌아간다.

다시 발길 옮긴다. 지난 2004년 성탄일 후 복싱데이. 인도네시아 반다 아체(Banda Aceh) 쓰나미 재난 쓸고 간다. 반다 아체 수백 명 쓰나미 고아들 갈 곳 없다. 자카르타 미국 침례교회 품 찾는다. 상상치 못한 일. 쓰나미 이전 외부인 및 서양인 출입 철저히 금지된 무슬림 지역 반다 아체. 정부로부터 합법적 기독교 교육 허락받는다. 결코 우연 아니다. 지구촌 기독교 자선 발길 굳게 닫힌 철옹성 반다 아체 문 연다. 숱한 인명 피해 불러온 가슴 아픈 자연 재난 쓰나미 하나님 풍차 방앗간 돌린다.

하나님 사악한 인간 역사 코너 만나 부드럽고 선한 가루 빻으신다. 하나님 지구촌 참혹한 역사 기적으로 ‘조율’(Tuning-up)하신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렴.” 하얀 가루 맷돌 사이 뿌려대는 신기한 어머니의 맷돌질. 재미있을 듯하여 급한 마음에 마구 돌렸던 어설픈 나의 맷돌질. 부서지지 않은 채 후드득 내뱉는 곡식 알맹이.
“아서라 얘야. 그만두거라!” 지금 생각하면 심히 부끄런 어설픈 나의 맷돌질. 부서지지 않은 채 뛰쳐나온 곡식 알맹이 골라 맷돌 아귀 속에 다시 넣는 어머니 손길 하나님 손길. 다시 조용히 돌아가는 어머니 맷돌질…
하얀 가루로 다시 태어나지 않은 곡식 빵으로 식탁에 오를 수 없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 볼 수 없다.”우리 배우고 가르치는 모든 성경 진리 어쩌면 이 모두 하나님 풍차 방앗간 이야기.

고달픈 세상 역사 바라보며 실망하는가? 본토 떠나 다른 나라 처마 밑 고달픈 이민 생활 피곤한가? 오늘 하나님 풍차 돌아가는 소리 내 삶에 들리지 않는가?
때로는 우렁차게 때로는 잠자는 아기 숨소리처럼 돌아가는 하나님 풍차 방앗간 소리. 하나님 풍차 종종 천천히 돌아간다. 서두르다간 놓쳐버리기 십상인 하나님 풍차 방앗간 비밀.

오늘도 세상 바람 부는 곳 어디든 하나님 풍차 방앗간 돌아간다. 귀 하나 세상에 주라. 다른 귀 하나 풍차 돌리시는 하나님께 드리라. 세상 역사 바람 부는 곳 어디든 하나님 풍차 그 바람 타고 돌아간다.

그 풍차 무거운 맷돌 돌려 잠 깨운다. 맷돌 곡식 만나 하얀 가루 뿜어낸다. 은밀한 고난 부스러기 끝내 하얀 부활로 태어난다. 내가 사는 싸우스엔드(Southend-on-Sea) 해변 오늘 바람 세차다. 어딘가 세차게 돌아가는 하나님 풍차 방앗간 소리 귓가에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