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기대와 마주한 현실

뉴질랜드에 가을이 왔다. 요즘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 정말 장관이다.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해서 바라보며 감탄했던 그 하늘,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에 바라본 지금의 하늘은 같은 하늘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감사를, 또 어떤 이들에게는 불평을 쏟아놓게 만든다. 하늘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변한 것일까?

이번 글에서는 뉴질랜드 7년 차 이민자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마주하는 현실과 처음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의 막연한 기대의 간격의 차이를 글로 써보고자 한다.

이민을 오는 것도 대단하지만 사실 이민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민을 와서 삶을 살아가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이민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선택권이 없이 인생을 살아내야 할 수밖에 없는 길에 들어선 것일지도 모른다.

이민을 와서 해결해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신분문제, 경제문제, 그리고 의미문제일 것이다.

신분문제라 함은 비자문제를 의미함이요, 경제문제라 함은 신분문제가 해결된 후에 그래도 어느 정도 삶을 누릴 수 있는 경제력을 확보하는 것이요, 의미문제라 함은 사람은 가진 것 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본인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 대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자아실현의 문제다.

본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하고 싶은 것과 경제력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 동일한 사람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지만, 이민의 길에 들어선 이상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일을 동시에 하기보다는, 한 가지를 위해 다른 한 가지를 포기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처음 이민을 오면 영주권을 받기 위해 발버둥치며 새로운 문화와 환경, 그리고 자연의 웅장함으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게 된다.

자격을 얻기 위해 영어시험을 보고, 힘든 학업을 따라가느라 헉헉대며 겨우 코스를 졸업하고, Job Offer를 받기 위해 이곳 저곳에 CV를 넣어보지만, “Thank you for your application, unfortunately,”라는 답 메일 조차 받기도 어려운 곳이 이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 과정 속에 힘들게 은혜와 기적으로 Job Offer를 받고, 풀타임이 되고, 시급을 맞추어 영주권을 받아 신분문제를 해결한 후에 밀려오는 감격과 기쁨은 금방 사그라지고, 그때서야 비로소 본인을 돌아보게 된다.

쉬운 영주권이 어디 있을까? 누구든 신분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재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장전된 총알들을 많이 소진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조금 생겼을 때, 비로소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녹록지 않은 가정경제, 계속 지출되는 렌트비, 물세, 전기세, 그리고 통신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조금이나마 이곳에서 저축하며 살아가려면 결국은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진실을 몇 가지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영주권은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이민의 시작일 뿐이지 이민의 완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주권을 받기 위해 필요한 관문 중 하나가 영어점수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안다. 하지만 그 영어가 점수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민 인생을 결정하는 마침표라는 것을 깨닫고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땅에 심은 씨앗은 시간이 지나면 싹이 나지만, 영어라는 씨앗은 이민을 온 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그 동안 놓았던 펜을 들어보지만, 이미 길들여진 생활의 패턴을 바꾸고 그 동안 나에게 쉼을 주었던 ‘안전지대(Comfort Zone)’에서 다시금 변화의 길로 들어서는 ‘도전지대(Stretch Zone)로 들어서기란 이민을 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직업,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 새로운 인생을 찾아 이민을 왔지만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이 배움은 끝이 없으며 한 산을 겨우 넘으면 또 다른 큰 산을 만나게 된다.

뉴질랜드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학군이 존재하고, 거주하는 지역과 소속된 공동체에 따라 앞으로의 이민 인생이 얼추 결정된다.

어떤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듯이 이민을 온 나 자신, 나의 자녀, 그리고 나의 가족이 거주하는 지역과 소속된 공동체에 따라 어떤 사람이 되며, 어떻게 살아갈지 그리고 어떤 인생이 될 지가 대충 결정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성격과 개성들의 사람들, 그리고 날마다 배우고 넘어야 할 언어와 문화의 장벽, 매 순간마다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정답이 없는 상황과 선택들 속에서 이민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깨달을 때 살면 살수록 나의 기대가 얼마나 막연했었는지를, 그리고 마주한 현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알게 된다.

새로운 만남을 개척하기도 어렵고, 신뢰할 만한 깊은 관계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관계를 맺기가 어려운 것 같다. 만나면 떠나고, 떠나면 다시 새로 오는 사람들의 반복 속에서 이젠 이것이 이민 인생이려니 하면서 그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 떠날 것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본인도 떠난다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남들에게 떠나고 싶다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삶이 바로 이민의 삶이다.

많은 사람이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이민을 온다. 하지만 사모하고 기대하고 온 지상낙원이 내가 생각한 그 낙원이 아닐 때,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사랑에 불붙은 청춘 남녀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을 하고 인생을 살아갈 때 내가 기대한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닐 때, 정말 좋은 집인 줄 알았는데 살면 살수록 집에 어떤 부분들의 문제가 나타나는 그런 기분, 정말 좋은 차인줄 알았는데 타고 다닐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실망감처럼 말이다.

이민의 기대가 이루어지는 사람은 본인이 원하는 환경을 소유한 사람이 아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한 마음으로 자족하는 사람이 아닐까?

더 나은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민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한다면 아마도 막연한 기대와 마주한 현실의 간극의 차이는 줄어들 것이다.

세상에 지상낙원은 없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뉴질랜드에 온다면 실망은 더 커지고 불만은 쌓여갈 것이다.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고, 크고 작은 문제가 있는 곳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려는 마음의 태도를 가진다면 더 나은 이민 생활을 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나에게 맡겨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삶이 나의 삶이 되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