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 목회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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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이던 25년 전 영어 연수를 목적으로 호주 시드니와 오클랜드에서 한 달씩 머문 적이 있다. 그리고 몇 년 후 가족과 함께 다시 뉴질랜드에 올 계획을 세우며 대도시를 피해 한적한 곳을 찾다 눈에 들어온 곳이 이곳 크라이스트처치이다. 순전히 도시 이름에 반해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을 때 한인 교회들은 이제 막 교단별로 하나씩 세워져 가는 시기였다.

세계 어느 나라든 한인들이 사는 이민 도시는 비슷한 패턴으로, 지역에 하나의 교회만 있다가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교회가 새로 세워져 가는 과정에서 지역교회 안에 크고 작은 갈등이 내재하곤 한다. 당시 몇 안 되는 목회자들끼리도 교류가 적었고, 신학배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보이지 않는 견제(?)와 그걸 지켜보는 타 종파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현실이 안타깝고 마음 아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몇 년 후 단독 목회를 시작하면서 제일 우선시 했던 사역 중 하나가 교회간 연합과 목회자들의 동역이었다. 당시 젊은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기도 모임이 자연스럽게 정기적인 목회자 연합 모임으로 이어졌고, 이 모임이 기초가 되어 지금까지 15년 이상 목회자 연합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새로 이곳에 부임하는 목회자들이 자연스럽게 동역에 동참하는 연합사역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이곳에 오는 부교역자들도 자연스럽게 연합해서 사역하는 것이 이곳 크라이스트처치에 전통이 되었다.

청년, 청소년 연합집회로 아름다운 동역 이뤄
올 해로 15년 이상 연합으로 모이는 7월 청년, 청소년 연합집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목회자들이 생각을 함께 나누고 또 협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단순한 행사를 위한 연합이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 과정에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방해하는 세력도 있다. 개인주의적인 생각들, 과도한 욕심들이 드러날 때가 그러하고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간 간극이 그러하다. 또한 목회자 개인의 어려움들이 연합사역에 반영될 때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고 자란 우리 자녀들이 교회의 연합과 목회자들의 동역을 지켜보면서 자라왔기에 어떤 어려움 속에도 우린 이 아름다운 동역을 포기할 수 없다. 매년 그렇지만 올해는 더욱 다양하고 풍성한 사역들이 준비되고 있다.

부모님들을 위한 부모교실. 집회 전에 먼저 모여 서로를 알아가는 전야제와 이를 위해 각 교회 여전도회에서 다양한 메뉴로 준비한 장터, 그리고 다음세대 청소년에 포커스를 둔 영어로 진행되는 집회와 프로그램, 또한 벌써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호주 뉴질랜드 목회자,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MK, PK 집회까지 숨가쁘게 7월 한 달이 지나갈 것이다. 이 집회를 위해 이곳을 잠시 떠나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우리 자녀들이 이 기간에 맞추어 휴가를 내어 방문을 하게 되니 지금부터 가슴이 설렌다.

연합사역은 아름다운 사역
연합사역은 함께 선교하고 함께 동역하며 교회와 성도간 연합하여 주님의 몸을 세워나가는 아름다운 사역의 모습이다.“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4:12)는 말씀처럼 우리가 함께 연합하고 동역할 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큰일을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정글을 탐험한 학자들이 재미나는 실험을 시도해 보았다. 한 곳을 지정하여 그 곳에 사는 수 많은 종류의 짐승들을 한 종류씩 없애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실험해 본 것이다. 먼저 새를 없애 보았다. 그랬더니 새소리가 없는 정글은 마치 공동 묘지처럼 적막한 숲이 되어 버렸다. 다음에는 원숭이들을 쫓아내 보았다.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 다니며 나뭇가지를 꺾고 숲을 망가뜨리는 원숭이들인 줄 알았는데, 원숭이들이 떠난 숲은 나무들이 서로 엉키면서 썩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징그러운 뱀들을 다 제거해 보았다. 그랬더니 천적이 없어진 쥐들이 그 숲에서 판치며 날뛰기 시작했고, 쥐들로 인해 해충을 잡아먹던 벌레들이 모두 없어짐으로써 숲이 병들어 죽어 가는 것이었다.

이 실험을 통해 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은 서로 함께 공생하고 더불어 살아갈 때에 건강하고 질서가 잡힌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이 서로 돕고 살아가도록 창조하셨다. 성경은 서로 도와 함께 일하는 것을 동역(同役, Fellow Worker)이라고 표현하였다.

동역이라는 말을 자주 쓴 사람이 사도 바울이다. 그는 성도에게“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린도전서 3:9)라는 존귀한 명칭을 쓰기까지 하였다. 비단 자연과 인간만이 동역자가 아니다. 하나님도 동역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서 존재하시면서 서로 동역하신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위해 동역하셨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동역의 기쁨 회복해야
“오늘날 교회와 목회자들이 가장 많이 실패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복음전파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님의 몸된 교회에 이미 이루어 놓으신 동역의 진정한 기쁨을 상실한 것”이라고 고(故)옥한흠목사는 어느 신학자의 표현을 인용하여 오래 전 지적한 바 있다.

현대 교회들이 많은 부분에서 자기중심적 사랑에 빠져있고 그 여파로 동역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개인화 추세는 교회도 개교회 울타리 안에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향해 사랑과 섬김으로 동역의 기쁨을 가져야만 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에 우리는 공동체성의 표현인 동역의 기쁨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동역은 다니엘 리켓(Daniel Rickett)의 표현에 의하면‘헌신과 상호의존을 공유하는 관계’라고 정의하였다. 잭 팝지스(Jack Popjes) 같은 이는‘둘 이상의 단체가 한 단체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동역이 필요한 이유는 성경적인 원리이며 명령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다른 지체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자라게 되어있다. 동역은 또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동역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각 지체가 확실한 정체성과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의존적인 관계는 동역을 해치게 되기 때문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강점으로 서로의 약점과 필요를 채워줄 때 진정한 동역이 가능하다.

동역을 위해서는 상호간 열린 대화가 필수이다. 관계에서 생겨나는 많은 문제는 대화의 부족에서 온다. 서로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시작하면 문제의 반은 이미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동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쪽에서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관계는 동역이 오래가지 못한다. 서로를 세워주는 자세를 가지고 헌신할 때 동역이 가능하다.

또한 동역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끊임없는 관용과 용서가 요구된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동역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갈등의 요소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관용과 용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협력을 위한 기도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점에서 서로를 위한 끊임없는 중보의 기도가 있을 때 동역에 필요한 실제적인 힘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