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에서의 남편과 아내

처음 뉴질랜드에 와서 가족이 함께 지낼 집을 찾기 위해 잠시 2주간 한인 집에 플랫으로 머문 적이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부싸움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는데 잊혀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그 조언은 다음과 같은데, 첫째로 아무리 화가 나도 큰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지 말아라. 옆집 사람이 경찰에게 신고해서 경찰이 온다.

둘째로 절대로 화난다고 벽치지 말아라. 뉴질랜드 벽은 약해서 금방 부서진다. 셋째로 아무리 속상해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라. 그거 퍼지는 거 순식간이다.

그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몇해 지내보니 그 말씀이 얼마나 맞는 말씀인지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만큼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새로운 땅으로 왔지만 건강한 부부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이민이라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만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뉴질랜드에 올 때 충분한 대화를 통한 합의된 하나의 목표를 갖고 오기보다는 전적으로 나의 결정을 통해 이민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좋은 시기도 있었지만, 특별히 어려운 시절을 지날 때 가장 아내로부터 듣기 싫었던 말은 본인이 원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데리고 와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느냐, 내가 오고 싶어서 여기에 왔냐, 당신이 데려왔으면 행복하게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반응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민 정착의 동기가 사라지고 정말 다 접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또한 더불어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하는 마음에 아내가 안쓰러워진다.

실제적인 부부싸움의 원인은 아마도 ‘돈’ 때문일 것이다. 많이 가진 사람도, 적게 가진 사람도 적합한 직업을 가지고 이민을 오지 않은 이상 통장의 잔고는 금방 바닥이 드러난다.

또한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한국인으로서 결국 뉴질랜드 사회에서의 직업은 한정되어 있기에 고된 노동과 더불어 하루하루 삶을 힘들게 살아내는 것은 1세대의 당연한 삶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아끼는 방법은 결국 한국에서의 소비습관을 바꾸거나,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다른 직업에 비해 고되지만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30년 넘게 살았던 생활습관이 이민을 왔다고 한 순간에 바뀌거나 자존심이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변화되고 배우자가 변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 과정에 다툼은 당연히 일어난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냉면을 만들어 먹으려고 면과 육수를 사다가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좀 더 차갑게 하려는 나의 욕심에 얼음을 너무 많이 넣은 나머지 육수가 싱거운 맹탕이 되었다. 그날 심하게 부부싸움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학생비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왔는데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반찬에 고기가 없어서 또 심하게 화를 내고 그날도 심하게 다투었다.

힘든 이민 생활 가운데 그나마 가장 큰 기쁨은 먹거리인데, 그 먹거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니 서로 날카로워지고 다투게 되었다.

이민 사회는 좁다. 좁기에 처신을 잘해야 한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오해의 소지의 행동마저도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부부관계를 지키는 지혜로움이다.

필자는 한국에 있을 때 청년 사역을 하면서 자매들을 심방하고 같이 커피도 마시며 때로는 픽업도 해주었다. 심방을 하는 것은 교회 일을 하는 것이니 아내도 적극적으로 나의 사역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곳은 뉴질랜드다. 뉴질랜드에서 이성이 단둘이 커피를 마시자는 것은 내가 당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표시이기에 이성과의 심방은 아내와 동행하거나 아내의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교회의 모든 직원과 성도들이 볼 수 있는 교회카페나 사무실에서 이루어진다.

집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아내와 동행하고, 집에 이성이 혼자 있다면 밖에서 간단히 용무를 이야기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실제로 그 사실이 일어났는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았는가의 여부를 떠나, ‘아무개가 그랬다더라’ 라는 루머는 부부관계의 심각한 균열을 초래하기에 그런 오해 자체가 나오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는 것이 건강한 부부관계를 지키는 열쇠가 된다.

남편과 아내의 영어 실력 차이와 뉴질랜드의 이해도 차이도 부부갈등의 원인이 된다.

남편은 그래도 가장이기에 인터넷 설치부터 은행 업무, 집 문제, 자녀 학교입학 문제를 위해 부족한 영어지만 가족의 생존을 위해 노출된 영어환경에 있기에, 이민초기에는 아내보다 영어실력이 그래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가 본인 스스로 해야 할 일마저도 남편을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아무리 이민을 남편의 주도하에 왔다고 하지만 아내가 남편 없이도 살아갈 기회를 제공해주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서로가 피곤해지게 된다. 부부관계가 아닌 이민 자체가 목적이 되어 이민을 온다면 그 관계는 건강할 수 없다.

이민생활이 힘들고, 눈물나고, 아프고, 어렵더라도 같이 힘들어야 하고, 같이 울어야 하고, 같이 아파야 결국 부부관계는 더 깊어지고 건강해진다.

남편만 꿈을 이루고 남편만 영어를 하게 되면, 아내의 입장에서 본인은 자녀만 키우고 자녀만 바라봐야 하는 존재인가라는 상실감에 빠질 수 있다.

아내 역시도 꿈이 있고, 영어를 잘 하고 싶은 소원이 있기에 아내의 자아실현에도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하는 것 역시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는 좋은 환경이 될 것이다.

어느 한 쪽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따라와라는 방식보다는 부부가 함께 아름다운 추억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것이 더 바람직 할 것이다.

어느 날 딸에게 꿈이 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본인이 커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결혼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물었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싸우는 거 보고서도 결혼하고 싶어?” 그랬더니 하는 말이 “싸우는 시간도 있지만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 더 많아서 괜찮아”라고 대답한다.

물론 앞으로 우리 부부가 어떻게 관계를 이끌어 나가는지에 따라 딸의 대답은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딸의 대답에 우리 부부가 그래도 지금까지 잘 걸어왔구나라는 위로를 받는다.

다시 말해 부부싸움의 대처법은 그래도 잘 자라주는‘자식’이 아닐까 해서 자랑 아닌 자랑을 써본다. 동시에 자녀로 인해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또한 자녀로 인해 부부싸움이 화해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주일예배가 시작된 첫머리에 한 이민자 노부부가 손을 잡고 강단 앞으로 나와 이번 주가 자기들의 50년째 결혼기념일이라 말하며 성도들에게 축하를 받던 기억이 난다.

아직 그 세월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던 나는 그저 성도들과 박수만 쳤을 뿐인데 그 50년이 이 글을 쓰면서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부부가 함께 하는 이민생활 속에서 그 50년이라는 세월이 의미는 무엇일까?

분명히 그 시간 속에 함께 울고 웃었던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 부부가 함께 키운 관계의 나무는 숲이 잎이 무성하고 열매가 달려 그 그늘 속에서 자라는 많은 젊은 부부들의 삶의 이정표가 되지 않았을까?

나 역시 사랑하는 아내와 이민자로서 부부의 삶의 이야기를 한 글자씩 써내려 가고 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도우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며 우리도 누군가에게 정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부부가 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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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감리교신학대학, 동 대학원 졸업, 한국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 뉴질랜드로 유학 와서 Elim Leadership College에서 공부, Elim Christian Center Botany Campus에서 한인담당목사로 키위공동체 안에 있는 한인공동체를 섬기고 있다.